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제 미니홈피의 게시판을 둘러보았습니다.
2003년부터 간간이 써놓은 짧막한 글들을 보다가
2005년 그러니까 제가 스물 다섯 살 때 써두었던 글이 다시금 보니 지금의 저에게 꽤 인상적이어서
부끄러움을 매우 무릅쓰고 이렇게 공개합니다. 제가 저 때는 저런 생각을 했군요. 하하.
생각의 깊이와 표현의 풍부함은 나이와 꼭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혼란스러웠지만 또릿또릿했던 생각과 고민,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면 정리되었던 생각의 조각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을 열어 소리내지는 않았던 스물 다섯 살의 제가 문득 생각나는 저녁입니다.
장거리 마인드 – 단거리의 긴장
- 2005. 08. 19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그래서 힘을 비축하기도 해야 하고
너무 조급한 마음을 먹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장거리 경주라고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
비틀댈 수는 있지만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나를 긴장하게 한다.
42.195킬로미터를 뛰는 마라톤 선수들의
평균 속도는 100미터에 15~16초란 걸 전에 TV에서 보았다.
초등학교 이후 내가 전력질주해도 절대 나오지 않던 숫자.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이 숨이 턱에 닿도록 뛰는 속도를
그들은 두 시간을 넘게 뛰는 거다.
인생의 여로에서도
그러한 사람들이 아마도 많겠지.
독하다, 는 말은 의지에 플러스 실천력까지 겸비된 자에게
바치는 세 글자의 인색한 동사다.
그래도 다행이
달리기와 달리
우리는 잠시 옆길로 샐 수도
도망갈 수도 주저앉아 쉴 수도 있다.
그치만 걱정 많은 내게는
그 휴식이 다음 도약을 위한 내공을 쌓거나
혹은 완전한 휴식 그것이거나
아무튼 무언가 제대로, 열심히, 해야 한단 생각에
그래서 그 둘 중 무엇도 아니라면
'잘못된' 것이란. 살짝 외면하지만 결코 버릴 수는 없는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
장거리야.
라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실은 단거리 선수의 속력을 보면서
그리고 차근차근 한걸음씩 땅을 밟고 나아가는
경보선수의 발걸음을 보면서
둘 중 어느 것에 기준을 맞추어야 할지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낙관과 방심
불안과 포기
막연한 기대를 끌어안고 가기에는
세상은 이미 너무 반듯하게 자리가 잡힌 듯 보인다.
어서 나만의 속도를
그 속도로 뛸 벌판을 찾고 싶다.
그 벌판을 위해
버릴 수 있을 확신을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꼭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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